천로역정 중에서 (2/2)

김 선 태 목사
December 15, 2011
나팔소리

천로역정 중에서 (2/2)

크리스챤은 말머리를 무지에게 돌리며 말했다. “자, 한번 이야기해봅시다. 지금 하나님과 당신 영혼 사이의 관계는 어떠합니까?”

무지: “좋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나는 모든 선한 것들에 대해 항상 동의를 하고 있거든요. 걸으면서도 그런 생각을 하면 마음에 위안이 옵니다.”

크리스챤: “어떤 선한 것들에 대한 동의입니까? 좀 말해주십시오.”

무지: “예를 들면 하나님과 천국이 있다는 데 대한 동의이지요.”

크리스챤: “그런 동의는 마귀와 저주받은 영혼들도 합니다(약2:19).”

무지: “하지만 나는 그것들을 동의할 뿐만 아니라 원하기도 하지요.”

크리스챤: “여기 오기를 싫어하는 많은 사람들도 그렇게는 합니다. ‘게으른 자는 마음으로 원하여도 얻지 못하느니라’(잠13:4).”

무지: “그렇지만 나는 하나님과 천국을 위해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크리스챤: “거기에 대해서는 의심이 갑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을 버린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니까요. 그보다 어려운 일은 별로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어떻게 자신이 하나님과 하늘 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버렸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까?”

무지: “내 마음이 내게 그렇게 말했습니다.”

크리스챤: “지혜자가 이르기를, ‘자기의 마음을 믿는 자는 미련한 자라’고 하였습니다(잠28:26).”

무지: “악한 마음의 말은 그러하지만, 내 마음은 선한 마음입니다.”

크리스챤: “그것을 어떻게 입증할 수 있습니까?”

무지: “천국의 소망 중에서 마음은 나를 평안하게 해줍니다.”

크리스챤: “그것은 자기 기만일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마음이란 아직 소망할 근거도 없는 것들을 소망함으로써 평안을 줄 수도 있으니까요.”

무지: “그러나 내 마음과 생활은 잘 일치됩니다. 그러므로 나의 소망은 든든한 근거를 갖고 있는 것이죠.”

크리스챤: “누가 당신의 마음과 생활이 잘 일치된다고 말했습니까?”

무지: “내 마음이 내게 말해주었습니다.”

크리스챤: “내가 도둑인지 아닌지 내 친구에게 물어 보라고 한다더니, 당신 마음이 당신에게 그렇게 말했다구요? 이 문제에 관한 증거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할 수 있는 것이지요. 다른 것들의 증거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무지:”하지만 선한 생각을 하면 선한 마음이 아닙니까? 또 하나님의 계명에 따라 살면 선한 생활이 아닙니까?”

크리스챤: “예, 선한 생각을 하면 선한 마음이고, 하나님의 계명에 따라 살면 선한 생활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과 실제로 그렇게 행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죠.”

무지: “그렇다면 당신은 무엇이 선한 생각이고 무엇이 하나님의 계명에 따라 사는 생활이라고 보십니까?”

크리스챤: “선한 생각에는 여러가지 종류가 있지요. 자기 자신을 존중하는 생각, 하나님을 존중하는 생각, 그리스도를 존중하는 생각, 다른 것들을 존중하는 생각 등.”

무지: “우리 자신을 존중하는 선한 생각이란 어떤 것입니까?”

크리스챤: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되게 생각하는 것이죠.”

무지: “그러면 우리 자신에 대한 생각은 언제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를 이룹니까?”

크리스챤: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말씀이 행하는 판단과 동일한 판단을 행할 때지요. 좀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자연 상태의 인간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선을 행하는 자도 없도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롬3:10,12; 창6:5; 8:21) 그러므로 우리가 자신에 관해 이러한 생각들을 가지면, 우리의 생각은 선한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생각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기 때문이죠.”

무지; “내 마음이 그렇게 나쁘다는 걸 난 믿을 수가 없습니다.”

크리스챤: “그러므로 당신은 당신 생활에 있어서 자신에 관해 결코 선한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계속 이야기를 해나가겠습니다. 말씀은 우리 마음에 대한 판단을 하듯이 우리 생활 방식에 대한 판단도 합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활 방식에 대한 생각이 그 말씀의 판단과 일치될 때, 두 가지가 다 선하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무지: “당신의 말에 관해 설명을 좀 해주십시오.”

크리스챤: “하나님의 말씀에 이르기를, 인간의 길은 구부러진 길이니 선하지 않고 사특하다고 하였으며, 또 인간은 본성적으로 선한 길에서 떠나 있어 그 길을 알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시125:5; 잠2:15). 어떤 사람이 자신의 길을 이와 같이 생각할 때, 즉 지각있고 겸손하게 자신의 길을 생각할 때, 그는 자신의 길에 괸해 선한 생각을 갖고 있다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제서야 그의 생각과 하나님의 말씀의 판단이 일치되기 때문입니다.”

무지: “하나님에 관한 선한 생각은 무엇입니까?”

크리스챤: “우리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도 말했듯이, 하나님에 관한 우리의 생각이 그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될 때, 그 생각은 선합니다. 즉, 우리가 말씀에서 가르치는 대로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에 관해 생각할 때 그러합니다. 그의 존재와 속성에 관해서는 내가 여기서 길게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다만 우리와 연관시켜 하나님의 속성을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그는 우리 자신보다도 우리를 더 잘 아시며, 우리가 우리 자신 속에서 아무 것도 발견 못할 때도 우리의 마음을 속속들이 환히 들여다보실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의는 그의 코 앞에서 악취를 풍길 뿐이며, 아무리 우리가 최선의 행위를 한다 해도 그의 앞에 자신 있게 설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생각할 때 하나님에 관해 올바르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무지: “당신은 내가 하나님을 나보다 더 멀리 보지 못하시는 분으로 여기는 바보인 줄 아십니까? 그리고 나는 내 최선의 행위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려는 짓 따위는 하지 않습니다.”

크리스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고 여기십니까?”

무지: “간단히 말해서, 의롭다 하심을 얻기 위해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고 여깁니다.”

크리스챤: “그래요? 당신은 그리스도의 필요성을 깨닫지 못하면서도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당신은 자신의 원래적 약점과 현실적 약점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당신 자신과 당신 행위에 대한 그런 견해를 갖고 있으면, 하나님 앞에서 의로움을 주시는 그리스도의 개인적 의를 필요로 하지 않게 되지요. 그런데도 당신은 자신이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고 말하는 겁니까?”

무지: “하지만 나는 모든 것을 잘 믿고 있습니다.”

크리스챤: “어떻게 믿고 있습니까?”

무지: “나는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위해 죽으셨음을 믿습니다. 그리고 그의 율법에 대한 나의 순종을 은혜롭게 받아주심으로써 나를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시고 저주에서 건져 주실 것을 믿습니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공로를 통하여 나의 종교적 행실들이 아버지께 열납되게 하시며, 이로써 나를 의롭게 만드시리라는 것입니다.”

크리스챤: “그러한 당신의 신앙 고백에 대해 답을 해봅시다. 첫째로, 당신은 환상적인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 어디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당신은 거짓된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그리스도의 개인적 의로부터 의로움을 취해 그것을 당신 자신에게 적용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째로, 이믿음은 그리스도를 당신 인격에 대한 칭의자가 아니라 당신 행위에 대한 칭의자로 만듭니다. 그러면 당신의 행위가 당신 인격보다 중요한 셈이 되므로, 이러한 믿음은 거짓된 것입니다. 네째로, 따라서 이 믿은은 기만적인 것이며, 전능하신 하나님의 심판날에 당신은 이로 인해 진노를 받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진정으로 의롭다 함을 주는 믿음은 영혼으로 하여금 율법에 의해 상실된 자신의 위치를 깨닫고 그리스도의 의로 달려가 거기서 피난처를 찾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그리스도의 의란 하나님으로 하여금 당신의 순종을 받아들이사 의롭다 함을 주시도록 만드는 은혜의 행위가 아니라, 우리에게 요구되는 바를 우리를 위해 행하시고 또 당하시는 가운데서 이루어지는 율법에 대한 그의 개인적 순종입니다. 진정한 믿음은 이러한 의를 받아들입니다. 또 이 의의 치마폭에 의해 영혼은 그 수치를 가리우게 됩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 앞에 흠없이 설수 있으며, 영접함을 얻고, 정죄를 모면할 수 있습니다.”

무지: “뭐라구요? 당신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없이 다만 그의 인격 안에서 모든 일을 이루셨다고 주장하는 것입니까? 그런 독단적인 착상은 우리 열망의 고삐를 느슨하게 만들며 우리를 마음에 원하는 대로 살게 만들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든, 만약 믿기만 하면 그리스도의 개인적 의에 의해 의로움을 얻게 될 테니까요.”

크리스챤: “당신의 이름처럼 참 무지하군요. 당신의 그 대답이 이를 입증해줍니다. 당신은 의로움을 주는 의가 어떤 것인지, 또 어떻게 하면 믿음으로써 당신의 영혼을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로부터 구할 수 있는지 모르고 있군요. 예, 당신은 이 그리스도의 의를 믿는 믿음의 참 구원적 힘에 대해서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 힘은 우리의 마음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굴복하게 만들며, 그의 이름과 그의 말씀, 그의 길과 백성을 사랑하게 합니다. 당신은 무지하게도 이런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하시는군요.”

소망: “그에게 하늘로부터 계시되는 그리스도를 본 적이 있는지 물어보세요.”

무지: “뭐라구요? 당신은 계시 되게 좋아하는군요. 나는 당신들처럼 계시 운운하는 사람들은 정신이 약간 돌았다고 믿어요.”

소망: “아니 왜요? 그리스도는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어 육체의 자연적 이해력으로는 그를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를 계시해주시지 않으면 사람들을 통해서는 그를 알고 구원에 이를 수가 없습니다.”

무지: “당신은 그렇게 믿지만, 나는 그렇게 믿지 않습니다. 내 머리 속에는 당신처럼 많은 변덕스러운 생각이 들어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나는 내마음이 당신 믿음보다 더 낫다고 확신합니다.”

크리스챤: “내가 한 마디만 하게 해주십이오. 당신은 이 문제를 그렇게 가벼이 말해서는 안됩니다. 내가 단언하건대, 방금 내 착한 친구도 이야기했듯이, 아버지의 계시가 없이는 어느 누구도 예수 그리스도를 알 수 없습니다. 영혼을 그리스도께 굳건히 붙어 있게 하는 믿음도(올바른 믿음일 때 그러합니다) 그의 넘치도록 크신 능력이 없으면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마11:27; 고전12:3; 엡1:18,19). 불쌍한 무지씨, 내가 보기에 당신은 이 믿음의 역사에 관해 무지한 것 같군요. 공상에서 깨어나 자신의 추악함을 바로 보고 주 예수님께 피해 가십니오. 그리하면 그의 의, 곧 하나님의 의를 통해(왜냐하면 예수님은 곧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저주에서 벗어나게 될 것입니다.”

무지: “당신들은 어서 빨리 가십시오. 나는 도저히 당신들과 함께 갈 수 없습니다. 당신들이 앞으로 나아갈 동안, 나는 잠시 뒤에 머물러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에 그들이 말했다.

“아, 무지여, 당신은 아직도 어리석음을 못 버리는가?

열 번이나 주어진 선한 충고를 무시하다니.

그대가 만약 이를 거절한다면

오래지 않아 악한 일을 당하게 되리니

아직 시간이 있을 때 기억하시오, 두려워 말고 서시오.

선한 충고를 잘 받아 간직하고 귀를 기울이시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이를 경홀히 여긴다면

내가 장담하건대, 무지씨, 당신은 길 잃은 자가 될 것이오.”

그리고나서 크리스챤은 자기 친구에게 말했다. “자, 나의 친구 소망이여, 우리는 다시 우리끼리 걸어가야 할 것 같소.”

그리하여 내가 꿈에 보니, 그들은 멀찌기 앞서 가고, 무지는 뒤에서 절름거리며 따라갔다.

크리스챤이 다시 자기 동행에게 말했다. “저 불쌍한 사람 때문에 마음이 몹시 상하는군요. 틀림없이 그는 결국 몹쓸 일을 당하게 될 겁니다.”

소망: “저런! 우리 마을에도 저런 형편의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집집마다 거리마다 있었고, 순례자들 중에도 있었습니다. 우리 가운데도 그렇게 많은 데 저 사람이 태어난 곳에는 오죽 많겠습니까?”

크리스챤: “그들이 보지 않으려고 눈을 가리웠다는 말씀이 참으로 맞군요. 이제 우리끼리니 말인데, 당신은 저런 사람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들은 죄의식이라던가 위험스런 자신의 상태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것을 전혀 느끼지 않을까요?”

소망: “당신이 연장자니까, 당신이 직접 대답해주시지요.”

크리스챤: “내 생각에는 그들도 가끔그런 것을 느낄 것 같아요. 하지만 본성적으로 무지한 저들은 그런 자책감들이 자신의 유익을 도모하기 위한 것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런 죄의식들을 떨쳐버리려고 필사적으로 애쓰고, 또 일부러 자기 마음에 대해 아첨하기를 계속하는 것이죠.”

소망: “당신의 말처럼, 나도 두려움이 인간의 유익을 도모하고 그들이 순례길을 올바로 시작할 수 있게 도와준다는 데에 동의합니다.”

크리스챤: “참되고 올바른 두려움이란 다음 세 가지 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로, 그 두려움은 죄에 대한 깨달음에서부터 생겨나는데, 이런 죄의식은 결과적으로 구원을 낳게 됩니다. 둘째로, 그 두려움은 영혼으로 하여금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를 굳게 붙들도록 합니다. 세째로, 그 두려움은 영혼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크게 경외하게 하며, 그의 말씀과 길을 애정 있게 지키게 하고, 거기서 벗어나 좌로나 우로 치우치는 일을 못하게 막지요. 즉, 하나님을 모욕하는 일이나 평화를 깨는 일, 성령을 슬프게 하는 일, 원수로부터 비난 받을만한 일들을 피하게 합니다.”

소망: “맞습니다. 참 올바른 말씀을 하셨어요. 그런데 우리가 거의 다 마법의 땅을 벗어났나요?”

크리스챤: “왜요? 이 대화가 지루합니까?”

소망: “천만에요. 하지만 우리가 어디쯤 와 있는지 궁금한데요.”

크리스챤: “아직 2마일 정도 더 가야 합니다. 이제 다시 우리가 하던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무지한 자들은 이렇게 두려움으로 이끄는 죄의식이 자기네 유익을 도모하기 위한 것인 줄 모르고, 이를 떨쳐버리려고 필사의 노력을 하지요.”

소망: “그들은 죄의식을 떨쳐버리려 어떤 노력을 하나요?”

크리드챤: “첫째로, 그들은 이 죄의식이 실제로 하나님으로부터 옴에도 불구하고 이를 마귀로부터 오는 것처럼 여깁니다. 그래서 그 죄의식이 자신들을 멸망시킬 것처럼 생각하고 이를 거부합니다. 둘째로, 그들은 이 두려움이 자신들의 믿음을 해칠까봐 걱정합니다. 애석한 일은 그들이 자신들에게 전혀 믿음이 없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들은 마음을 완악하게 먹고 그 두려움을 거부합니다. 세째로, 그들은 이 두려움이 자신들의 알량하고 낡은 자존심을 손상시킬까봐 온 힘을 다해 이를 막으려 합니다.”

소망: “이 중 어떤 것은 실감이 갑니다. 나도 자신을 깨닫기 전까지는 그렇게 했으니까요.”

크리스챤: “자, 이제 우리 이웃 무지에 관한 이야기는 이 정도 하고, 다른 유익한 문제로 넘어가 봅시다.”

소망: “좋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당신이 먼저 시작하십시오.”

크리스챤: “당신은 10년 쯤 전에 종교적으로 앞장 서서 활동하던 ‘일시’라는 사람을 아십니까?”

소망: “알다마다요! 그는 정직의 도시에서 약 2마일 쯤 떨어진 ‘은혜없음’이라는 곳에서 ‘배반’이란 사람과 이웃하여 살았지요.”

크리스챤: “맞습니다. 그들은 한 지붕 아래서 살았었지요. 그 사람은 한때 크게 각성한 적이 있었습니다. 내가 믿기에, 그는 당시에 자기 죄와 그로 인해 야기될 보응에 관해 약간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소망: “나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우리 집은 그의 집에서 3마일도 채 안떨어져 있었는데, 그는 종종 나를 찾아와 많은 눈물을 흘리곤 했지요. 진정으로 나는 그를 불쌍히 여겼으며 그에 대한 소망도 적잖이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주여 주여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다같은 가람들은 아니더군요.”

크리스챤: “그는 언젠가 나를 찾아와서는 자기도 순례길을 가기로 결심했다고 말했었지요. 그러나 갑자기 그는 ‘자기구원’이라는 사람과 친해지더니 나와 사이가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소망: “이제 우리가 그에 관해 이야기를 하게 되었으니, 그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갑자기 되돌아서는 이유를 좀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크리스챤: “예, 그건 큰 유익이 될 것입니다. 형제가 한번 말해 보시지요.”

소망: “내 판단으로는, 거기에 네 가지 이유가 있다고 봅니다. 첫째로, 그들의 양심은 깨우침을 받았지만, 그들의 마음은 아직 변화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죄책감이 약해지자 종교심도 희박해져 자연히 다시 옛 길로 돌아가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개를 볼 때 그렇지요. 개는 병이 들면 자기의 먹었던 것을 다 토해내고 말지요. 그러나 개는 자기의 자유 의사로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만약 개에게도 자유 의사가 있다고 한다면), 배가 아프기 때문에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만약 병이 낫고 배가 편안해지면, 자기가 토해낸 것들에 대해 완전히 욕심이 끊어졌던 것이 아니므로 다시 그 토설물들을 먹어치웁니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말씀이 사실입니다.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벧후2:22). 그러므로 내가 말하건대, 그들은 오직 지옥의 고통에 대한 의식과 두려움때문에 하늘나라에 대해 열심을 내다가, 지옥에 관한 의식과 저주의 두려움이 시들해지자 하늘나라와 구원에 대한 열망도 시들해진 것입니다. 죄책감과 두려움이 사라지면, 하늘나라와 행복에 대한 욕망도 사라지고 그들은 다시 옛날 길로 되돌아가게 됩니다. 둘째로, 또 다른 이유는 그들이 비천한 두려움에 너무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이 비천한 두려움이란 사람에 대한 두려움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잠29:25). 그리하여 저들은 지옥의 화염이 그들 귓가에서 이글거릴 때에는 하늘나라에 대해 열렬한 것 같아 보이지만 일단 그 공포가 다소 약해지면 다른 생각을 하게 됩니다. 즉 모든 것을 내어버리는 모험을 하지 말고(왜냐하면 저들은 이것이 어떤 것인지 모르기 때문이니다) 적어도 피할 수 있는 불필요한 고통은 피하는 편이 현명하다는 생각입니다. 그리하여 저들은 다시 세상에 빠지게 되는거죠. 세째로, 종교에 의지한다는 수치심이 그들이 나아가는 데 있어 걸림돌이 되기도 합니다. 교만하고 오만한 자들의 눈에 종교는 천박하고 치욕스러워 보입니다. 그러므로 지옥에 대한 느낌과 진노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면 다시 옛날 길로 치닫게 되는 것입니다. 네째로, 죄책감을 느끼고 두려운 생각을 갖는다는 것은 그들에게 있어 몹시 우울한 일입니다. 그래서 저들은 직접 일이 터지기 전까지는 자신들의 비참함에 대해 잘 생각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 일을 처음 보게 될 때, 만약 그것 보기를 사모하고 있었다면, 곧 의로우신 자에게로 도피하여 안전함을 얻을 수도 있겠지만, 내가 앞에서 잠간 언급하였듯이, 그들은 죄책감과 두려움을 느끼기 싫어하기 때문에 일단 하나님의 진노와 공포에 대한 각성이 사라지면, 다시 마음을 완악하게 먹고 더욱 더 자신들을 완악하게 만드는 길로 애써 나아가는 것이죠.”

크리스챤: “당신은 참 잘 지적해주었습니다. 정말로 그 모든 근본적인 원인은 마음과 의지에 변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저들은 마치 판사 앞에 서 있는 죄인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죄인들은 두려워 떨면서 마치 마음으로 깊이 회개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그 두려움은 교수대에 대한 두려움이요, 자기가 지은 죄에 대한 혐오감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이 다시 자유를 얻게 되면, 도둑과 사기꾼 기질이 되살아나게 됩니다. 반면에 만약 그들의 마음이 진정으로 변화되면,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소망: “이제 내가 그들이 되돌아가는 이유를 이야기했으니, 당신은 그들이 되돌아가는 양상에 관해 이야기해 주시겠습니까?”

크리스챤: “기꺼이 그러죠. 우선 그들은 자기가 가지고 있던 하나님에 관한 기억과 죽음, 장래의 심판에 관한 생각들을 떨쳐버립니다. 그리고나서 그들은 점차 개인적인 의무들, 예를 들면 골방 기도나 정욕의 절제, 경성함, 죄에 대한 탄식 등을 소홀히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 간의 생기 있고 따뜻한 교제를 끊어버리지요. 이 후에 그들은 점차 설교 듣는 일이나 성경 읽는 일, 경건 모임에 참석하는 일 같은 공적인 의무들을 저버리게 됩니다. 그리고나서 저들은 경건한 사람들에 대해 험담을 하기 시작하고, 종교가 갖고 있는 몇몇 약점들을 보고는 종교색을 뒤로 던져버립니다. 그 다음에 육신적이고 느슨하고 음탕한 자들과 어울려 사귀기 시작하지요. 그들은 함께 은밀히 육신적인 음담패설을 즐기게 되고, 정직하다고 여겨지는 자들 안에서 그런 것들을 발견할라치면 더욱 담대히 저들의 본을 따르고자 하지요. 이 후에 그들은 공개적으로 적은 죄들을 범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마음이 굳어지면 완전히 본색을 드러내게 됩니다. 그러면 다시 비참의 깊은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 만약 은혜의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그들은 자기 기만 속에서 영원히 멸망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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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선 태 목사

Writer at Carmen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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