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동안 바람이 심하게 불더니 잠시 꽃보다도 더 화려하던 나뭇잎들은 이제 죄다 땅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잎이 떠나간 나뭇가지 사이로 살갗을 더듬는 차가워진 바람결에 나무들은 침묵한다. 생명의 근원으로 침잠한다. 자기 성찰의 시간이다. 인생에도 가을이 있다. 여름 한 철 무성하던 육신의 욕망들, 생각들, 바벨탑을 쌓던 꿈들이 낙옆처럼 하나 둘 떨어져나가고 오직 생명을 직시하는 가을이 있다. 모든 치장을 벗어버린 나목들을 바라보며 내 영혼은 더욱 진지해진다.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가식 없는 생각들이 지난 날들을 더듬는다.
무엇이 나를 그토록 목마르게 했던가. 무엇이 나를 그토록 절망하게 했던가. 무엇을 위해서 나의 인생을 소진시켜 왔던가. 어느 유행가의 가사처럼 태워도 태워도 재가 되지 않는 진주처럼 영롱한 사랑을 찾아 헤메었던가. 형체 없이 나의 내면을 들끓게 하던 혼돈 그 속에 꿈틀거리던 본능들, 참을 추구하면서도 한편 거짓에 타협하던 모순들, 나는 용서하면서 다른 사람은 용서할 수 없었던 이중성, 도저히 이해할 수도 용납할 수도 없었던 잊혀지지 않는 생채기들, 다른 사람들의 아픔은 아랑곳 없이 나의 아픔만 키워가던 아집들, 사랑하기 때문에 미워했던 이율배반의 칼날 앞에서 소리없이 울던 눈물들, 이제는 세월의 이끼에 퇴색되고 변색된 얼룩들을 더듬어 본다.
저물어가는 이 가을에 아직도 내 영혼의 언저리에 얼룩으로 남아있는 거짓들을 낙옆처럼 떨어버리고 나목으로 하나님 앞에 서기를 기도한다. 내가 죄인 되었을 때에, 내가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기까지 나를 사랑하신 그 사랑으로 충만한 계절이었으면 좋겠다. 풍년이 든 가을의 들녘처럼 하나님의 사랑으로 풍성한 계절이었으면 좋겠다. 인심 좋은 시골 아낙네의 따끈한 햇쌀밥 같이 너를 사랑하는 계절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