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향은 충청도 어느 시골입니다. 집에서 시외 버스가 다니는 차길까지 보통 걸음으로 20분 정도가 걸리는 시골이었습니다. 집으로부터 차길까지 20분 정도의 그 길은 내가 학교에 다니던 시절부터 나에게는 집과 세상을 이어주는 통로와 같은 길이었습니다. 집에서 세상으로, 세상에서 집으로 수없이 떠나고 돌아오는 통로였습니다. 그 길 위로 뿌려진 수많은 기억의 편린들, 그 세월 너머에는 특별히 나에게 지워지지 않는 가슴에 묻어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집을 떠나 서울에서 생활을 하면서 나는 명절을 포함하여 기껏 일 년에 몇 번 밖에는 집에 갈 수 없을 때가 있었습니다. 교통이 좋지 않았던 그 시절 서울에서 집까지는 결코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습니다.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을 때에 그 간격은 더 멀게만 느껴졌습니다. 그 때에 차길에서 집까지의 그 길은 나에게 서울에서 집에 이르는 거리의 심리적 축소로 상징화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항상 하루 이틀 더 머물다 가기를 바라셨지만, 그럴수록 아쉬움만 커지게 마련이었습니다. 벌써부터 마당에서 서성거리시던 아버지는 작별 인사를 드리고 떠나는 아들의 뒤를 따라나서곤 하셨습니다. 한참을 서둘러 걸어가다 뒤를 돌아보면 아버지는 여전히 저만큼 뒤따라오고 계셨습니다. 끝내 버스에 훌쩍 올라타고 떠나는 아들을 멀리서 버스가 산모롱이를 돌아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보시던 아버지! 그 모습이 어버지께서 이 세상을 떠나신 지금도 내 가슴 속에 살아 있습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가는 그 길은 이제 돌아갈 집이 없는 나에게는 영원한 꿈 속의 길이 되었습니다. 그 길 위로 아들을 저만큼 뒤따라오시던 아버지의 모습도 이제는 아들의 마음 속에서만 수없이 되살아나는 안타까운 사랑입니다.
나는 이제 알았습니다. 내가 어디에 있든지 나를 바라보시던 아버지의 그 사랑이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던가를 알았습니다.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나를 향하여 변할지라도 아버지는 변하지 않는 사랑이었습니다. 아버지! 내가 숱한 잘못으로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릴 때에도 결코 나를 미워하지 않으시고 사랑으로 바라보시던 오직 한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나에게 유일한 사랑이었던 아버지도 지금은 아들의 곁을 떠나셨습니다. 우리의 영혼을 지으시고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유일하고 영원하신 변치 않는 아버지이십니다. 언제든지 우리의 잘못을 용서하시고 기다리시는 유일한 사랑이십니다.